기록의 시초는 어디일까요? 종이가 아닌 '진흙'에 새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이 글에서는 점토판의 제작법, 설형문자 기록 방식, 고온 소성 실험까지 완전 복원 실험 과정을 안내합니다. 역사와 기록 기술에 관심 있다면 놓치지 마세요.
1. 점토판 제작의 기본 과정
점토판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용된 가장 오래된 기록 매체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종이 대신, 당시 사람들은 강가에서 채취한 진흙을 반죽하고, 이를 손으로 평평하게 펴서 네모난 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표면은 아직 촉촉한 상태였고, 이때 나무나 갈대 펜을 이용해 상형문자(cuneiform)를 눌러 새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점토의 수분 조절’입니다. 너무 젖으면 글씨가 번지고, 너무 마르면 글씨가 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는 물과 함께 섞은 점토를 반죽해 이틀 정도 숙성시킨 후, 손바닥 크기로 성형하여 평평하게 다듬습니다. 여기에 표면을 살짝 건조시키면 기록에 가장 적합한 점도가 됩니다. 기록이 끝난 뒤에는 말려서 단기 보존하거나, 더 오래 보관하려면 불에 구워 영구 보존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점토판의 복원 실험은 단순한 만들기가 아닙니다. 고대인들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손의 감각과 물성의 이해, 환경 조건의 통제가 어우러져야 가능한 복잡한 기술입니다. 저는 특히 ‘글을 적는다’는 개념이 단순한 정보 기록이 아닌, 재료 자체를 조형하고 이해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이 기술이 매우 인상 깊다고 느꼈습니다.
2. 설형문자 기록 실험의 실제
설형문자는 점토판에 사용된 대표적인 문자 체계로, 쐐기 모양의 문자를 뜻합니다. 갈대펜처럼 끝이 납작한 도구를 눌러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기관들은 이 도구로 상형문자를 빠르게 찍듯이 눌러 기록했고, 이 방식은 손글씨와는 완전히 다른 ‘조형적 기록’입니다. 오늘날 이를 복제하려면 먼저 적당한 도구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유사한 도구는 실제 갈대를 얇게 잘라 끝을 사선으로 자른 다음, 끝부분을 부드럽게 깎아 만든 '점토용 펜'입니다. 이 펜으로 점토판에 수직으로 눌러 찍거나 비스듬히 눌러 다양한 모양의 쐐기를 조합합니다. 이 방식은 오늘날의 타자기처럼 빠르고 반복적인 정보 기록에 특화된 도구였습니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이 기술을 사용해 회계 장부, 계약서, 서신까지 모두 점토판에 남겼으며, 그 수천 장의 기록이 지금도 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복원 실험을 통해 직접 설형문자를 써보면, 단지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눌러 새긴다’는 조형적 행위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인류가 기록을 어떻게 조작하고, 시각화하고, 보존하려 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3. 소성과 보존 실험의 의미
점토판은 말려서 쓰기도 했지만, 중요한 기록은 반드시 ‘소성’을 거쳤습니다. 말리기만 한 점토판은 깨지기 쉽고 물에 약하지만, 고온에서 소성한 점토판은 거의 석기처럼 단단해져 수천 년도 견딜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이를 위해 간이 노(爐)를 만들고, 점토판을 쌓아 넣은 뒤 나무나 숯을 태워 수 시간 동안 구웠습니다. 이 온도는 약 600도~900도 사이로, 오늘날 도자기 가마보다는 낮지만, 충분히 점토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열이었습니다. 실제 복원 실험에서는 야외에서 점토판을 건조 후, 장작을 이용해 간이 화덕에서 6~8시간 정도 천천히 구워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열 균형과 바람입니다. 급격한 온도 변화나 수분이 남은 점토는 구울 때 터지거나 쪼개지기 쉽기 때문에, 하루 이상 충분히 말리고, 천천히 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소성을 마친 점토판은 진한 테라코타색이 돌며, 손으로 두드려도 단단한 소리가 날 만큼 견고해집니다. 이 기록물은 비를 맞아도 잘 손상되지 않고, 수백 년 후에도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영구 문서’가 됩니다. 점토판은 결국, 문자 이전에 먼저 만들어진 ‘물리적 기록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복원하며 단순한 글쓰기 이전에 ‘기록을 위한 매체를 직접 만드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대 기술은 지금도 교육, 박물관 체험, 대체 기록 기술로 충분히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